하얀 지팡이 (경북매일 2014.12.25.)
경상북도 시각장애인 복지관 문예교실 팀의 창간 문집이 발행되었다. 진심을 담아 축하드린다. 회원들을 만나 함께 공부한 지도 벌써 이 년이 지났다. 따뜻한 감성과 진지한 열정으로 글쓰기 강좌에 임하던 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손 끝에 감각을 모아 점자 교재를 읽어 내리던 박만철 님, 행여 교재의 좋은 글을 놓칠세라 포인트 굵은 글씨를 집중해서 들여다 보던 양현주 님, 시각장애인용 컴퓨터를 활용해 강의 내용을 섬세하게 기록하던 오세종 님, 봉사의 여왕이신 임복희 선생님이 준비해온 명작을 온 귀를 열어 고요히 감상하던 김창원 님, 진심이 담겨 더욱 느리고 어눌해진 말투로 자신의 작품을 해설하던 장태욱 님 등, 글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에 뒤지지 않았던 회원님들 얼굴 하나하나가 떠오른다.
모인 우리가 한 공부는 글쓰기와 문학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곧 사람살이에 관한 공부였다. 어차피 문학도 사람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밤새 써온 작품을 함께 읽으며 웃고 울었던, 사람을 향한 그 마음이 곧 문학하는 본질이었다. 눈이 아닌 오롯이 마음으로만 보는 그 여정에 동참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결실을 모아 창간호인 `하얀지팡이`를 엮어낸 것을 회원들과 함께 기뻐하련다.
다른 긴 말보다 문집에 실린 회원의 글 몇 구절을 전하는 게 더 의미가 있으리라. “(지나던 객이 무심코 던진 말이) 저 아들 눈이 멀었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엄마가 돌아가시든지 고생하시든지 아니면 저 아들이 죽거나 고생하셨을 겁니다. 원인은 조상님들 묏자리입니다, 라고 단정하는 것이었다. 함부로 내뱉는 그 여자의 말에 어머니와 나는 충격을 받았다. 옆에 있는 돌과 대빗자루를 들어 저 몹쓸 여자를 힘껏 때려주고 싶었다. 그때 내 심정은 돌 맞은 개구리였다. 인생 여정을 거치는 동안 나도 어언 죽지 않을 만큼의 면역이 생긴 개구리가 되었다. 이제는 웬만해선 남이 울 때 함부로 웃지 않고, 남이 웃을 때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게 되었다.(장태욱 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