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 최초 100대 명산 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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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6 17:12
시각 장애인 최초 100대 명산 완등!
마지막 100번째 명산인 천관산 정상을 등정했다.‘천관산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다. 산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십 여 개의 기암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올라 있는데 그 모습이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다 하여 천관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천풍산天風山, 지제산支提山이라고도 한다.’
아흔아홉 개의 명산을 오른 뒤, 마지막 천관산에 올랐다. 같이 정상에 오른 동생이 안내 표지판에 적혀 있는 천관산의 내력을 읽어 주는 순간, 울컥 감동이 밀려 올라왔다. 100대 명산 완등 정도 가지고 무슨 유난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100개의 명산을 올랐지만, 단 한 번도 정상의 모습을 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68세인 나는 일급 시각 장애인이다. 젊은 시절 군 장교로 복무하던 중 40대 중반부터 한쪽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전역할 땐 다른 쪽 눈의 시력마저 나빠져 3년 후에는 완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전맹全盲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힘들어하던 중 우연한 인연으로 산을 오를 기회가 생겼다. 무척 힘들었지만 형용할 수 없는 성취감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 100대 명산을 완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등산은커녕 산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던 아내의 배낭끈을 뒤에서 잡고 첫발을 디뎠다. 혼자 산행해도 힘든데 뒤에서 끈을 잡고 따라오는 나를 인도하는 아내는 무척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내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1년에 몇 개의 산을 올랐다. 그리고 고향 친구 이윤식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1년, 2년 시간이 지나 어느덧 아내와 친구를 따라 약 70개의 명산을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남부 지방에 있는 30개의 산은 경남 창원에 사는 친동생과 함께 올랐고, 지난 7월 마지막 장흥 천관산에 올라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대한민국 시각 장애인 최초 100대 명산 완등이 아닐까 싶다.
봉사 연주회 1,000회 목표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높고 험한 산을 오르는 동안 겪은 위험과 고초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래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전국의 명산들을 올랐다. 정상에 오를 때마다 비록 눈으로는 아무런 경치를 볼 수 없었지만 아내와 친구의 자세한 설명과 묘사로 멋진 풍광을 마음으로 보고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보이는 것 이상의 감동을 누릴 수 있었다.
전국의 100대 명산을 오르겠다던 목표를 달성한 지금, 20여 년 전 ‘치유가 불가해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다’는 의사의 진단에 절망했던 그때를 다시 떠올려 본다. 그때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앞을 볼 수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 마음으로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매일 복지관에 출근해 시각 장애 동료들과 악단을 조직해 양로원을 돌며 연주 봉사를 하고 있다. 100대 명산에 오르기까지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나도 아낌없이 나눔을 실천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100여 회의 연주회를 진행했다. 이젠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봉사 연주회를 1,000회 열자는 것이다.
희망은 신체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가슴의 눈, 마음의 눈으로 보면 더 밝은 내일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 자리를 빌어 아내 홍점주, 친구 이윤식, 동생 권영철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