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유인물 읽어보라는 면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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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에게 유인물 읽어보라는 면접관


여전한 장애인 취업 차별·편견…고용 대신 부담금 택한 공공기관 174곳
채용 꺼리지만 구조조정할 때는 장애인 직원부터
"장애인에게 노동이란 단순한 돈벌이 그 이상의 의미"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최유진 인턴기자 = "축구 할 수 있어요?"

평범한 질문이지만 지체장애인인 A 씨에게는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한 공공기관 채용 면접에 참석한 A 씨는 '장애인인데 불편한 곳이 어디냐','축구 경기를 할 수 있느냐', '취업도 못 하고 뭐했나' 등의 질문을 받았다.

구직자인 B 씨는 청각장애인이다. 일하고 싶은 회사는 있지만, 지원조차 할 수 없다. 신입 사원 지원 자격으로 토익 점수 600점 이상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B 씨는 "청각장애인은 토익 듣기 시험이 힘들기 때문에 독해 부문에서 만점(495점)을 받더라도 입사 지원 자격의 점수를 얻을 수 없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장애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점수 기준을 적용하라고 해당 기업에 권고했다.

일하고 싶은 장애인은 많지만, 여전히 장벽은 높다. 민간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에서조차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고용 대신 부담금을 택한 기업이 부지기수다. 장애인을 향한 차별과 편견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우리도 일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이라고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기업체의 인식 개선과 함께 장애인 취업을 돕는 교육과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 장애인 고용 대신 수백억원 부담금을 택한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고용 등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공공기관이 친인척 채용에만 혈안이다."

지난 18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성명서를 통해 "공공기관 27곳이 장애인 고용의무를 달성하지 못했고, 중증장애인 고용은 감축하는 등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에도 채용 비리를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해 납부한 고용부담금은 급증하고 있다. 2013년 66억5천400만원에서 2014년 114억6천800만원, 2015년 123억2천200만원, 2016년 135억7천700만원, 2017년 167억6천200만원 등 매년 증가세다. 5년 동안 납부한 고용부담금만 607억원이 넘는다.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기관도 늘고 있다. 2013년 143곳을 시작으로 매년 증가해 2017년 들어서는 174곳에 달했다.

조정식 의원은 "공공기관이 고용 취약계층인 장애인 의무고용률 달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인 책임을 외면하는 행위"라며 "게다가 예산안에 고용부담금을 미리 편성해 장애인 고용률을 지킬 의사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취업을 확대하기보다 국민 세금으로 부담금을 내겠다고 택한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장애인 고용률은 정부 부문은 2.81%, 민간 부문은 2.56%다. 모두 의무고용률 기준(공공부문 3.2%, 민간부문 2.9%)을 충족하지 못했다.


◇ 취업해도 불안정한 고용에 전전긍긍

정 모 씨는 어릴 적 사고로 손을 다쳐 지체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후 구직 과정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정 씨는 "허드렛일도 괜찮다고 강조했지만, 채용담당자는 '할 수 있을까'라고 의구심을 보였다"며 "몇번의 일용직을 거쳐 지금은 가족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장애인 경제활동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15세 이상 장애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8.7%다. 전체 경제활동 참가율보다 24.9%포인트 낮다. 고용률 역시 36.5%에 불과하다.

취업했더라도 고용이 불안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용근로자는 35.9%에 그쳤고 대부분이 임시근로자, 일용근로자 등 고용 형태가 취약했다.

장애인 근로자 3명 중 1명 이상은 단순 노무 종사자다. 사무 종사자가 15.9%, 기계 조작 및 조립 종사자가 14.0%로 그 뒤를 이었다.

처우도 열악하다. 장애인 임금근로자가 받는 월 평균 임금은 2017년 기준으로 178만원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월평균 임금보다 약 64만원 적다.

이선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하더라도 비장애인보다 수입이 적어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 차별과 편견에 우는 장애인 근로자

구직의 어려움은 편견과 차별에서 비롯된다.

인권위가 2008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접수된 '장애인 고용 차별 민원'을 분석한 결과 채용 관련 사건(38.8%)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퇴직 및 해고(22.3%), 임금 및 복리 후생(13.1%) 등이 뒤를 이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년' 보고서를 통해 "한 국내 기업의 채용 과정 중 면접관이 지원자가 시각장애인임을 알면서 유인물을 읽어보라고 시킨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3년간 가구 공장에서 근무한 문 모(30·발달장애인) 씨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나를 포함한 장애인들이 가장 먼저 권고사직 대상에 올랐다"며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월급도 다르게 받았고, 업무에서도 차별받았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관광호텔에서 인사 담당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이 모(36) 씨는 "장애인 의무 채용 규정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업무 능력이 떨어지고 맞는 일도 없다고 미리 판단해 (회사가 장애인)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한 장애인 고용 전문가는 "장애인 취업을 꺼리는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이 없고, 적합한 직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직업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기업이 원하는 직무 능력을 갖추도록 유도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기업의 장애인 고용 회피 이유가 변명이라는 지적이다.

고객을 직접 응대해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 장애인은 선입견에 운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청각장애인 아내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김현호(56) 대표는 "개업 초반에는 수화로 얘기하는 아내를 보고 '잘못 들어온 것 같다'고 다시 나간 손님도 많았다"며 "장애인에 대한 사회 시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 장애인 차별 인식 개선과 처벌 강화 시급

전문가들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 인식을 없애고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인환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장애인 취업이 활발한 노동 선진국의 경우 구직자와 기업을 연계해주는 지원책이나, 장애인의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한 훈련이나 교육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장애인도 사회 구성원이며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며 기업의 장애인 고용 확대를 당부했다.

장애인에게 노동이란 단순한 돈벌이 그 이상의 의미다. 사회복지사 박 모(35) 씨는 "장애인 대부분이 성년이 된 이후로 머물 곳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자립과 교육 등을 책임지는 특수학교나 복지관 등의 책임은 미성년 시절에서 매듭지어진다는 의미다. 박 씨는 "장애인에게 취업이란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다는 의미도 있다"며 "일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그저 집에 방치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서울의 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대범(26) 씨는 "첫 월급을 받아 어머니께 용돈 드릴 때 가장 뿌듯했다"며 "많은 장애인이 취업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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