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최초 대학 총장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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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최초 대학 총장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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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최초 대학 총장이 되다

많은 장애인들에게뿐 아니라 사회 그리고 태어난 가정을 원망하며 스스로 흙수저 라고 절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1977년 3월 시각장애인이라고 입학시켜 주지 않아 교무실에 하루 종일 서서 속으로 울면서 대학에 입학하게 해달라고 수백 번 기도했던 청년, 그 모습을 불쌍히 여긴 입학처장이 한 학기 조건부로 입학을 허락하였고 집이 가난하여 점심을 맹물로 해결했던 시각장애인 이재서 박사가 42년 만에 1901년 평양신학교로 시작하여 118년 역사를 가진 총신대와 총신신학대학원 7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역전의 하나님께서 감동적인 드라마를 쓰셨다. 전남 승주군 황전면 회룡리 신기부락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후 가난하여 중학교도 가지 못하고 산에서 나무를 하며 산비탈에서 중학교를 진학한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울어야 했던 소년 이재서에게 하늘은 더 가혹한 시련을 주었다. 15세 되던 해 알지 못하는 열병으로 시력을 잃어 보지 못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소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캄캄한 집에서 죽음 같은 절망을 일년 이상 견디어야 했다. 아무 쓸모도 없고 오히려 가난한 집에 짐만 된다고 생각한 그는 자살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옆집에 모여 떠드는 소리가 들려 가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 시각장애라는 자신은 그 모임에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을 더듬어 문 앞까지 갔지만 차마 들어갈 수 없어서 친구들의 신발을 만지고 이름을 부르며 또 울어야 했다. 그러나 시각장애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셨다. 서울 맹아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그곳은 국비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학비가 무료였다. 만약 학비가 있었더라면 그곳에도 가지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학교 고 3인 1973년 여의도 광장 빌리 그래함 목사 선교 집회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의 삶에 목적이 생겼다.

총신대학 입학 후 3학년 때인 1979년 10월 16일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단하였다. 한국밀알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성장한 다음에는 사회복지 박사 학위와 세계장애인 선교를 위하여 1984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JFK 공항에 마중 나올 사람도 정해지지 않을 정도로 아는 사람도 없었고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했다. 그러나 주님의 크신 은혜로 주님께서 주변에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시각장애와 가난을 이겨내고 사회복지 정책으로 뉴저지 럿거스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총신대학에서 교수하다가 올해 총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시각장애인 이재서 박사는 학문뿐 아니라 밀알선교단을 시작해서 장애인 선교 봉사를 같이 했다. 학문적으로도 존경 받는 교수로 활동했으며 이 박사의 리더 아래 밀알선교단은 세계 22개국 70개 지역에서 활동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장애인 선교 기관이 되었으며 형제 기관인 밀알복지 재단은 한국 최고의 장애인 복지 기관으로 성장했다.

3중의 장애를 가진 헬렌 켈러는 절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시각장애인 이재서 총장의 이야기도 헬렌 켈러 이야기에 뒤지지 않는다. 헬렌 켈러는 집안이 부유하여 설리반 선생을 가정교사로 쓸 수가 있었고 장애인을 후원하는 미국 사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재서 총장은 배를 굶어가며 공부해야 하는 가난이 있었고 장애인에게 편견을 갖는 한국 사회의 무시가 있었다.

이재서 총장의 이야기는 빛을 잃은 사람에게 참 빛을 주고 소망을 주는 이야기로 그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재산이다. 미국 사회가 헬렌 켈러 이야기로 인류에게 위로를 주었듯이 한국 사회가 시각장애 이재서 이야기로 고난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부활의 능력을 증거하며 용기를 주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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