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캠의 시각장애인 보조기기는 한국에 정착할 수 있을까?

기술 발전이 늘 모두에게 혜택을 주진 않는다. 그 열매는 대개 비장애인들의 몫이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스마트폰조차 대부분의 기능은 비장애인을 위한 사용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그 자체를 비난할 순 없다. 다만, 빠르게 발전하는 ICT 기술을 취재하는 입장에서 그런 기술들이 때론 우리 사회의 일부인 장애인을 위해서도 고르게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올캠 테크놀로지스(이하 올캠)는 꽤 눈길이 가는 기업이다. 자율주행 업계의 유니콘 ‘모빌아이’의 창업자 암논 샤슈아(Amnon Shashua) 교수의 또 다른 스타트업이자, 첨단 AI 기술을 접목한 장애인 보조기기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올캠의 시각장애인용 보조기기 ‘마이아이(MyEye)’는 2019년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발명품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올캠이 얼마전 본격적인 한국 활동을 개시했다는 소식에 직접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올캠 한국사업 총괄 김수범 대표를 통해 마이아이의 실제 시연 장면,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첨단기술’에 관한 올캠의 견해와 한국 사업에서 당면한 문제점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올캠의 시각장애인용 보조기기 ‘마이아이 2.0’. 별도의 자석 지지대로 탈부착 할 수 있다.
관점의 이동, 기계에서 사람 중심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OCR(광학문자판독) 제품 시장은 이미 꽤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장애인 사용성에 집중한 제품은 그리 많지 않다. 올캠이 기존의 잘못된 제품 개발 관점을 사람 중심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이유다.”
김수범 대표는 마이아이에 적용된 인간 중심의 접근법을 강조했다. 현재 시각장애인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돕는 OCR 기기 중 상당수는 스캐너와 같은 형태를 갖고 있다. 이를 사용해 뭔가 읽으려면 기기를 작동하고 물체를 직접 스캐너 위에 올리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여기에 따르는 불편이다. 장애인이 감각만으로 제품을 스캐너에 올리고, 손을 더듬어 카메라를 정확한 위치에 맞추는 과정은 철저히 기계 중심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올캠은 이를 사람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안경에 탈부착 하는 소형 AI OCR 기기 마이아이를 개발했다. 마이아이는 본체를 터치하거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만으로 눈앞의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물체가 있는지 음성으로 안내해주며, 글자를 읽어 주기도 한다.
마이아이를 사용하면서 읽고 싶은 종이가 삐뚤게 있든 조금 멀리 들려 있든 그런 문제는 상관없다. AI가 카메라에 비친 상황을 인식하고 사용자에게 필요한 답을 능동적으로 추출해내기 때문이다. 사람이 기계를 신경 쓰지 않아도 기계가 사람에게 맞춰서 작동하는 접근 방식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았던 당연함의 실현
사실, 요즘 AI 융합기기라면 이정도의 능동성은 대부분 갖고 있다. 하지만 특수기기 시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또한 앞서 말한 관점의 차이는 사소하게 보여도 실제 제품을 사용하는 장애인들 입장에서는 놀라운 변화로 돌아온다.
김수범 대표는 “마이아이 사용자들은 그동안 누군가에겐 당연할지라도 자신에겐 결코 그렇지 않았던 일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에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우리 고객 중,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이 한 분 있다. 그분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데, 그동안 한 번도 손님을 먼저 알아보고 응대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마이아이 덕분에 처음으로 단골 손님을 자신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그 상황을 ‘신세계’라고 표현하더라.” 이는 김 대표가 소개한 여러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다.
보조기기의 충분한 도움을 받는 장애인들의 일상은 비장애인들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마이아이로 작지만 알찬 변화를 누린 사람들은 적지 않다. 직접 택배를 수취하고 송장을 확인하는 일, 신간이 나왔을 때 점자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것 같은 사소한 일들이 그들에겐 모두 ‘신세계’다.
김 대표는 “아직 완벽하지 않은 기술일지라도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계속 개선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이아이의 캐치프레이즈인 Empower people, 즉 ‘시각장애인들이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준다’는 의미와 잘 부합되는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장애인용 보조기기 보급을 가로막는 ‘비용의 벽’
이처럼 꼭 마이아이가 아니라도 장애인용 첨단 보조기기가 널리 보급된다면, 그 자체로 장애인들의 삶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함께 따른다. 높은 가격 문제다.
현재 마이아이의 대당 가격은 글로벌 표준으로 4500달러, 한화로 약 580만원에 이른다. 장애인이란 소수의 소비층을 겨냥한 제품인 만큼, 수요가 적고 단가는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통 일반적인 장애인 전용 제품들도 같은 이유로 가격대가 높은 편인데, 이런 고가의 보조기기를 자비로 구입하는 건 누구에게나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국 정부가 여기에 보조금을 투입해 구입 비용의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받고 싶다고 아무 기기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김수범 대표는 “해외에선 이미 4년 전부터 마이아이가 판매되고 있고, 한국에도 이를 널리 보급하고 싶지만 진입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보조금 지원에도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
김 대표는 “장애인 보조기기 지원에 관한 국내의 제도 수준은 충분히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다만 국내 심사처들의 다소 보수적인 접근 방식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무엇보다 제품 검증을 위한 시연회 등에 나설 때면 주어지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호소한다.
터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등의 방식은 장애인들에겐 아직까지 조금 생소한 조작법이다. 하지만 조금만 배우면 충분히 익힐 수 있는 직관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만큼 충분한 설명, 시연 시간이 주어지면 제품의 가치를 충분히 어필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또 생소한 기업이나, 신기술 도입 자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일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선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올캠과 마이아이가 국내 장애인용 보조기기 시장에 진입하며 마주한 보이지 않는 벽이다. 이와 함께 고가의 첨단보조기기 지원금 규모도 지금보다 커져야 한다. 지원금은 한정돼 있는데, 이것이 몇몇 고가 기기 지원에 쓰이기 시작하면 기존에 등록된 기기 앞으로 돌아가는 금액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체 개선 노력은 당연…외부의 관심도 함께하길
김수범 대표는 독일을 모범사례로 들었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제품 등록에 필요한 기준을 갖고 있지만, 그보단 ‘사람들이 필요로 하면’ 지원한다는 기조가 강한 편이다. 새로운 사업자의 진입에도 너그러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변화의 폭을 좁게 가져가는 국내와는 대조되는 분위기다.
김 대표는 올캠에게도 숙제는 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장애인들이 더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쓸 수 있게끔 제품을 설계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지금부터라도 그런 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격 절감을 위한 기술 개발 노력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지금은 무엇이 첨단이며, 사용자들이 실제 어떤 점이 좋은지 깨닫게 할 수 있는 기회부터 충분히 만들어졌으면 한다. 특히 요즘 같은 비대면 위주 상황에선 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장애인 보조기기 시장에 대해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리고 싶다.”